내일은 삼일절 3.1운동은 우리가 알고 배운 것보다 훨씬 더 가치 있고 의미가 큰 독립 운동이다.
아마도 3.1운동이 없었다면 8.15도 없을겁니다 ...
국내의 수많은 독립 운동의 불씨를 키우고 일제의 탄압에 시들어가던
정신을 깨우는 데서 그치지 않고 국외의 식민지배하에 고통받던
여러 나라들의 독립운동에도 영향을 미친 위대한 독립 운동이다.
( 스코필드 박사가 찍은 사진 )
그위대한 운동뒤에는 서슬퍼런 일제시대에 맞서 푸른눈의 스코필드 박사가 있었다
한국인 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스코필드 (한번쯤 들어봤을 한국명 "석호필")
스코필드 박사는 3.1운동을 전세계에 알리고 아울러 일본의 만행도 생생한 사진과 함께 폭로를 했다
특히 삼일 운동 한달후 일제는 검거반이 제암리로 들어와
주민들을 모두 교회당으로 모이게 합니다,
일본군경은 모든문을 걸어 닫고 교회당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총격을 퍼부었습니다
한부인이 어린아기를 창밖으로 내밀며 아기만은 살려달라고 애원 했지만
그들은 이마저도 총검으로 잔혹하게 찔러 죽입니다
그리고 총질이 끝나자 대학살의 증거를 없애기위해 젚더미를 던지고
석유를 끼얹어 불을 지릅니다
제암리 학살사건으로 무려28명의 무고한 민간인이 비참히 죽음을 당했으며
교회당의 불길이 민가로 번지면서 31채의 민가도 잿더미로 변합니다 ...
(불타버린 제암리 )
대학시절 소아마비를 앓아 왼쪽팔과 오른쪽 다리에 장애가있는 스코필드였지만
그는 장애의 몸으로 수원역에서 제암리까지 20km 가넘는 거리를 자전거로 달려
제암리에 잠입 그리고 일본경찰의 눈을 피해 제암리의 참혹한 현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사진 촬영을하고 목격자 진술도 확보합니다
그리고 이사실을 미국 영국 캐나다 등으로 알려 전세계에 퍼지게 됩니다 ...
이런일은 아무나 할수있는게 아닙니다
더구나 푸른눈의 이방인이 서슬퍼런 일제치하에서 이렇게 할수있는건
그가 얼마나 한국을 사랑하고 독립에 힘쓴 사람인지 알수있기에 ...
당당히 민족대표34인으로 빛나고 또 동작동 현충원 애국지사의 묘역에
외국인으로는 최초로 안장 되었습니다 .....
(스코필드 박사는 종종 학생 민간인 등을 모아 강연도 자주하곤했다 ,, )
이사진은 스코필드선교사의 숙소에서
영어성경공부를 끝내고 찍은 사진
"삶에서 배워야 할 것의 대부분을 나는 스코필드 할아버지에게 배웠다." -정운찬-
뒷줄 첯번째가 정운찬 전 국무 총리 그옆이 이각범 전대총령수석비서관
바로 앞에는 김근태 전의원도보입니다 ...
“나 죽거든 한국 땅에 묻어 주오 - Frank W. Schofield ”
감사합니다
- 자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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