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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백강

자추61 2022. 10. 7. 22:17


◐ 50년전...

그날도 오늘처럼 여름소나기가 줄기차게 내리고,
작은 운동장엔 하얀 강물(白江)이 크고 긴 뱀처럼 꾸물거리며 흘러고 가고 있었다

6.25가 끝나고 전쟁의 상처로 모두가 가난에 찌들려 있었다.
냉혹한 현실은 전쟁보다 추위와 배고픔이 더 무서웠다

우리 4학년 1반 아이들은 대부분이 누더기같은 옷을 입었고
누구나 얼굴에는 곰팡이가 군데 군데 피어 있었다.

영양 부족으로 생겨난 마른 버짐이다. 점심시간이 되면 밥을 싸올 형편이 안되서
어떤애는 고구마 두개를 점심으로 가져 왔다가 놀림을 당하고"고구마"란 별명도 얻었다.

그래서인지 점심을 안가지고 다닌다, 아니, 싸올 수가 없는 것이었다.
밥먹으려 집으로 간다해도 꽁보리밥이라도 먹고오면 다행이다.

밭이나 논에 일 나가신 엄마가 커다란 무쇠솥에 넣어둔 고구마 두세개..그게 곧 점심이다.
그때는 그마져도 먹는게 다행이다 형편이 더 어려운 애들은 집에가도 먹을 것이 없다는 걸 알기에

자존심 때문에 일단 집으로는 간다. 한바가지의 샘물로 배를 채우고서
밥을 굶지 않은 채 하지만 꼬르륵 ~~ 애들은 금방 눈치를 채고 만다.

우리학교는 진해 시가지에서 십리정도 떨어진 작은 국민학교였다.
각 학년마다 남,녀 각 30명씩 학년이 올라가도 담임선생님이 바뀌는 이외는 달라 지는 건 없었다.

어떤 해는 그 선생님이 같이 올라 가기도한다 . 모두가 전쟁의 후유증으로 가난하게 살아가지만
우리반 학생 중 "서동식"이란 친구는 그중 더 가난했다 ..

아버지가 배타고 고기잡으러 갔다가 돌아가시고 엄마 혼자서 어렵게 동식이를키우고 있었지만.
그런 환경에서도 동식이는 공부는 잘해서 3,4등을 한 걸로 기억된다

동식이는 뒷통수가 남보다 유난히 더 튀어나와 까만 빡빡머리가 독사의 삼각형 머리와 닮았다고 해서
얻은 별명이 "독사대가리"

머리에 꿀밤 까지 주면서 놀리곤 했다, 그러던 어느 추운 겨울날~~
독사대가리 동식이가 유난히 앞섭을 가린채

꼼짝하지 않고 제자리에 앉아 있기만 하고 좀 불안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4학년 개구장이들이 그런 동식이 행동를 보고 가만히 있을리가 있는가?
몇명이 힘을 합쳐 억지로 그의 윗옷의 단추를 끌러 가슴을 헤쳤다. 그순간 앗! 놀람.. 우리는 못볼것을 본 것이다.

동식이는 옷고름이 달린 하얀여자 저고리를 속옷대신 입고 있었던 것이다.
그 날 동식이 엄마는 내복이 없는 아들에게 자기의 저고리를 내복대신 입혀 보낸것이다.

철없는 우리 남자애들은 여자 옷을 입었다고 놀려대고 여학생들도 여기 저기서 술렁이였다
어린마음에 얼마나 창피하고 부모님 원망을 했을까 !!!!!

독사 동식이는 다음 수업시간이 되기전 어느새 사라지고
한 2주일 후에 쭈삣거리며 다시학교에 나왔다. 퇴학하고 말거라고 생각했는데 참 다행이었다.

진해는 남쪽이지만 영상 4 ~5도 라도 바닷바람이 매섭기에 옷깃을 파고 드는 추위는 가히 대단하다 .
우리들은 군용 내복이라도 줄여서 입고 소매 길이가 길다보니 항상 겉밖으로 빠져 나와 쌔까맣게 떼꾹에 절어 있지만

그런대로 따뜻하기는 하다. . 그 동안 동식이는 옳게 생긴 바지한번 입어 보지 못하고
추위를 참으며 학교를 다닌 것이다. 날이 갈 수록 학교앞의 해병대 훈련소 군가 소리는 크게 들리고

모든 사람은 더욱 가난해 져만 갔다. 그 와중에서도 반가운 것은 학교에서
한달에 한번씩 우유가루를 한사람당 두컵씩 배급해 주는 것이다.

어른들은 미국에서는 동물 사료로 쓰던것이라고 했지만 우리들은 맛있기만 했다.
G.M.C 군용 트럭이 학교 운동장에 우리들 키만큼 한 종이드럼통을 몇개 내려 놓고가면

그 다음 날이 우유가루를 먹는 잔치날이다. 트럼통 겉에는 악수하는 두손이 그려져 있고
손뒤에는 미국을 상징하는 푸른 바탕에 흰 별 성조기가 그려저있었다 .



배급날, 번호 순서 대로 집에서 가져온 강통이나 그릇을 가지고 줄을 서면 선생님은 정확히
두컵(맥주잔 크기)씩부어 주신다. 그릇이 없는 애들들은 공책을 말아서 부라보콘 같이 세모꼴로 만들어 받기도 한다.

이 종이컵은 터져서 땅바닥에라도 흘리면 곧 눈물로 이어져 너무나 아까운것이다
얼른 엎드려 개처럼 바닥을 핧기도 한다. 자기 차례를 못참아 먼저 탄 애들에게

나중에 물어 주기로 하고 한입 빌려먹는 애, 한입에 너무 많이넣다 목이메어 기침하는 통에
친구 얼굴에 하얀 분칠도 한다. 모두가 손과 입이 하얗다.

짓꿎은 놈들은 여학생 얼굴에다 우유가루 분을 발라 주고 도망치면서 낄낄거리기도 한다.
수도물도 불티가 나고 아무리 조심해서 먹어도 옷은 우유배급날이란 흔적을 만들어 준다. 모두 모두 즐거운 날이 된다.

그런데, 결석이 잦은 동식이가 하필이면 우유 배급날인 오늘도 결석을 했다.
참 재수없는 놈이지... 우유가루 배급을 탄 다음날은

영양가있는 우유를 먹었으니 혈색이 좋아야 하는데 대부분이 얼굴이 더 나빠 보이고
뻥하니 구멍 하나만 뚫린 변소도 많은 손님을 맞이 하기에 바쁘다.

굶주린 뱃속에 기름기 있는 우유가 들어가니 밥통이 놀라고 창자는 그냥 통과.
곧바로 밖으로 내보낸 것이다. 어떤 놈들은 집에 가져가면 형에게 빼긴다면서

다 먹을 때까지 학교에 남기도 했니 말이다.. 배급을 준 며칠 후
정말 오랫만에 독사대가리도 학교에 나왔다. 그리고 지난 그 일도 잊고 친구들과 잘 어울려 장난도 쳤다.

그날은 교실 창밖로는 장대같은 소낙비가 오늘 같이 내리고 있었다.
마지막 수업시간을 마치고 선생님은 독사대가리 동식이를 따로 불렀다 .

그리고 교탁 밑에서 불룩한 누런 시멘트 종이 봉지를 독사대가리에게 주셨다.
우리들은 금방 그것이 동식이 몫의 우유가루란 걸 알았고 우리에게 준 것보다 양이 많다는 것도 눈치챘다.

독사대가리는 우유봉지를 받아 제자리로 가서 앉는 시간과 복도로 사라지는 선생님의 모습과 시간이 거의 같았다.
곧 바로 교실안이 술렁거렸고 동식이가 앉아있는 근처의 책걸상이 흔들리더니 동식이 주위로 수많은 애들이 모였다.

동식이를 겹겹으로 둘러 싸며 수많은 애들의 눈은 동식이의 우유봉지를 향했다.
때가 끼어 쌔까맣고 꼬질 꼬질한 조그만한 내민 손, 뻔한거 아닌가 좀 나누어 달라고 하는 거였다

동식이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전부 다주기에는 턱없이 모자라고, 누구에게는 주고 누구에게는 안준다면 그것도 어렵고,
상황이 집으로 가져 가기는 더더욱 틀렸다. 그렇다고 한 숱깔이라도 제입에 먼저 털어 넣기도 만만찮다 .

나라면 그 상항에서 어떻게 했을까? 친구들의 손을 밀치고 책상서랍에 넣으면 그만이고
친구들에게 약간의 욕을 먹더라도 집에 있는동생들과 나누어 먹어도 될것을...

독사대가리 동식이는 아무 말없이 멍하니 앉아 있기만 하더니 두눈에 눈물이
천천히 고이기 시작했다. 입술도 깨물었다.

눈물이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동식이가 벌떡 일어서더니 창가로 가서
하얀 우유가루 봉지를 비오는 운동장을 향해 힘껏 던졌다. 장대같은 빗줄기에 우유가루 봉지가 터지고

하얀 물방울들이 사방으로 튀면서 큰 원을 그리는가 싶더니
잠시후 거대한 하얀 강을 만들며 긴뱀 같이 꿈틀거리며 낮은 곳으로 ,

그리고 멀리 멀리 운동장 밖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동식이는 자리에 돌아가서 얼굴을 묻고 훌쩍 훌쩍 ㅡ,.ㅡ
그리고 우리모두는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아무 말이 없었다. 쥐죽은 듯 조용하니

가건물 교실 함석 지붕에서 나는 빗소리는 오늘따라 더욱 크게 들렸다.
우리들은 각자 제자리에 가서 묵묵히 책보따리를 싸서 집에갈 준비를 했다.

동식이는 어린 마음에 얼마나 아까웠을까?
그리고 친구들에 대한 서운함, 이 사건으로 우리들 가슴에도 무었인가 치밀어 올랐다.
많은 후회의 나날들 ...아이들은 모두 가슴에 돌덩이 하나씩을 안은 것이다..

"독사대가리" 동식이는 다음날, 또 그 다음날, 그 다다음날도.... 그리고 50년
오늘날 까지도 그는 우리들 앞에 나타 나지 않았다.

엄마속옷 까지입고 놀림당하고 , 우유가루로 우리를 울리던 동식이....
어떻게 변했는지 꼭 한번 만나고 싶다.친구야 .. 그리고 미안하다

해병대 입대해서 월남전에서 죽었다. 외국으로이민 갔다. 여러 풍문이 있지만
"독사 대가리" 동식이의 소식은 영영 우리들은 들어 보지 못했다..

그 때의 하얀강(白 江)은 지금도 내머리 속 작은 돌덩이가 아련히 자리 잡고 있다...
ㅡ,.ㅡ

이 이야기는 어느수기의 글을 제가 재 해석해서 다시 꾸며 본것입니다.
우리들의 어린시절에 볼수있는 그런모습이고 또 그시절이기에

이런 사건들도 종종 일어 날수 있었죠 예전에 영화 "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이 생각 납니다
긴글 끝까지 읽어 주신님들

감사합니다



여선생님으로 나온 김지미 ...
한창 때라서 그런지 예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