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애창곡

전우가 남긴 한마디 ,,,,,

자추61 2014. 6. 25. 17:20


오늘은 6.25 의 날 ,,, 하늘에서는 네이팜탄이 떨어지고
참호 속에서 적을 향해 갈겨대는 총탄이 빗발친다.

뿐이겠는가. 실탄이 떨어지면 육박전. 서로 엉켜서 나뒹굴었다
그야말로 피가 튀는 목숨을 건 싸움터였다.

아군 적군 할 것 없이 전사자가 속출했다. 낮에는 태극기, 밤에는 인공기.
뺏고 뺏기는 불바다 격전지에서는 주인이 따로 없었다.

하루에도 몇 차례나 이런 일이 벌어지곤 했다.
전기승 병사는 이 전투에서 머리와 다리에 부상을 입는다.
병원에 실려온 그는 곧바로 수술에 들어갔다. 그러나 마냥 병원에 있을 수 없었다.

전우애로 뭉친 전우들이 그를 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전쟁터로 나갔다.
하지만 이 전쟁터에서 그는 산화한다. 전우를 구출하려다 일어난 일이었다.
동생의 전사 통지를 받은 전오승 씨는 울 수도 없었다.

동생이 선택한 장렬한 죽음 앞에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던 것.
전쟁터에 나갔을 때부터 동생은 비장한 각오를 하지 않았던가.

1978년. 전오승 씨 가족들은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된다.
그러나 조국 땅 국군묘지에 잠들고 있는 동생을 두고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민을 가기 전에 전오승 씨는 국군묘지를 찾았다. 동생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온 전오승 씨는 그동안 가슴에 맺혀있던
응어리진 한(恨)을 비로소 쏟아 낼 수 있었다.
그건 바로 동생에 대한 그리고 참전용사들에 대한 진혼곡이었다.

'전우가 못다했던 그 소망/내가 이루고야 말겠소/전우가 뿌려놓은 밑거름/지금 싹이 트고 있다네/
우리도 같이 전우를 따라 그 뜻을 이룩하리/마지막 남긴 그 한마디가/아직도 쟁쟁한데/
이 몸은 흙이 되어도 조국을 정말/사랑하겠노라고―'

전오승 씨는 이 진혼가를 만들면서 울었다고한다 .
아무리 과묵한 성격이지만 이 때만은 눈물이 쏟아졌다.

이 노래를 부른 허성희 씨는 전오승 씨의 애제자. 스승이 이민을 가자
그녀 또한 해외로 떠난다.
전우가 남긴 한마디는 그녀가 부른 첫 노래이자 마지막 노래일지도 모른다.

'과거는 흘러갔다' '과거를 묻지마세요' '방랑시인 김삿갓' '효녀 심청' '장희빈' '경상도 청년' '백마야 울지마라'
'휘파람 불며''사랑의 송가' '푸른 날개' '해피세레나데' '인도의 향불' '미사의 종' '아리죠나 카우보이' 등

많은 명가요를 남긴 전오승 ..
부디 미국에서 건강하게 오래 사시길 빕니다